출처 : 인터넷 떠도는 글
언제였더라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었을 거임.
아무도 마스크를 안 썼었으니까.
강남 스벅에서 와이프를 기다리며
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쪼압 쪼압 빨고 있는데
대각선 방향에 아주 잘생긴 젊은이가 앉아 있었음.
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키도 커 보이고 얼굴도 작고...
내가 남잔데도 아 고놈 잘생겼다... 하면서 눈이 가더라.
나 말고도 주변에서 남녀 가릴 것 없이
슬쩍 슬쩍 그 남자를 쳐다보는 게 느껴질 정도였음.
그런데 웬 예쁜 여자가 그 사람 앞에 와서 탁 앉는 거임.
맨 처음에 여친인가 싶었는데,
남자가 여자를 흘끗 보더니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
"저 아세요?" 하더라. 그랬더니 여자가
"아니요, 제가 그 쪽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." 이러대?
그 순간 그 테이블은 더이상 평범한 테이블이 아니라
수많은 관람객의 눈귀가 쏠린 무대였음...
안 보는 척, 안 듣는 척 하고 있었지만
우리는 모두들 서로가 관객임을 알고 있었지.
우리의 주연 배우는 무슨 말을 할까...
이 극의 엔딩은 무엇일까...
클라이막스를 향하는 하나의 소극장이었던 거임.
남자는 아무말 않고 자기 앞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더니
왼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음.
아, 거기서 우리는 보고야 말았다.
왼손 약지에서 빛나는 반지를!
멋 없는 대사보다는 반지를 보이는 세련된 거절을!
그런데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?
여자는 분명히 그 반지를 봤음에도
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음.
끈질긴 여주인공...
아직 클라이막스는 오지 않았던 거임.
그 때 남자는 결정적 대사를 날렸다.
"그냥, 관심만 가지세요."
그리곤 무심하게 폰을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음.
남자는 여자에게 결코 눈길을 주지 않았고
결국 여자는 자리를 떴다.
크... 한 편의 짧은 단막극을 감상한 우리는
여자가 자리를 뜨고 남자마저 가게를 나섰음에도
관객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
방금 일어났던 사건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곱씹었음.
아무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
우리 모두 같은 여운에 잠겨 있음을 알고 있었지.
잠시 뒤 와이프가 도착해 내 앞에 앉았음.
나는 다리를 꼬고 목소리를 깔며
"저 아세요?" 라고 물었지만
와이프는
"뭐래.. 짜증나니까 아이스 라떼로 사와."라고 답했지.
호다닥 라떼를 사러가는 내 뒤로
주변의 테이블이 모두 뿜는 소리가 들렸지만,
관객이 아니었던 와이프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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